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상륙작전 (문단 편집) ==== 양동작전 ==== 해당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, 인민군을 교란할 양동작전이 필요했다. 양동작전이 시행된 곳으로 남한 지역에는 [[삼척시]], [[군산시]], 북한 지역에는 함경남도 신포시 마량도, 남포시 등이 있었다. 인천에 상륙한다고 해서 D-day(9월 15일)에 준비하고 있다가 그날 한번에 공격한 것이 아니다. 인천 상륙작전 이틀 전에는 인천~군산, 삼척, 마량도(함경남도) 등 주요 해안에서 대규모 폭격이 이루어졌다. 교란 및 기만작전이었다. 이를 통해 적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인천상륙에 방해가 될만한 주요 시설을 파괴했다. 일종의 사전 정지 작업이다. 인천은 9월 10일부터 미 해군과 공군을 동원하여 월미도를 비롯해서 인천지역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한다. 뿐만 아니라 적의 판단을 흐리고 혼선을 주기 위해 인천에서 군산 사이의 해안선에 지속하여 포격을 했다. * 남포에는 9월 4일부터 9월 14일까지 [[F4U 콜세어]]를 동원하여 폭격을 하였다. * [[전라북도]] [[군산]]에는 9월 5일부터 13일까지 주변 약 50km 부근의 교통망에 인천과 비슷한 규모의 폭격을 가했다. 이때 도로, 교량 등을 파괴함으로써 군산을 고립시키려고 했는데, 이는 상륙작전 직전 흔히 있는 공습 패턴을 의도적으로 따라한 것이었다. 또한 9월 12일에는 미 육군 루이스 엘리(Louis Eli) 대령이 지휘하는 미 육군 제1레이더스 중대(8227부대)와 영국 해병대 제41코만도로 구성한 미-영 혼성기습부대가 군산에 상륙기습을 시도하여 가벼운 교전을 실행, 이쪽으로 침투하였다는 사실을 북한군 측에 의도적으로 노출한 뒤 철수하였다. * 상륙 이틀 전인 9월 13일에는 강원도 [[삼척시]] 일대에 [[아이오와급 전함]] BB-63 [[미주리(전함)|USS 미주리 함]]을 동원한 함포 사격을 가하여 적들의 눈을 돌리려고 하였다. * 같은 날인 13일, 낙동강 전선의 총사령관인 미 제8군 사령관 육군 중장 [[월튼 워커|월튼 워커]] 장군은 기자회견에서 "유엔군과 한국군은 10월 중순 즈음에 총반격을 감행할 것입니다"라고 발언함으로써 기자들이 유엔군과 한국군이 10월 즈음에나 총반격을 한다는 기사를 앞다투어 내도록 유도하였다. 이 소식을 접한 북한군 수뇌부에서는 '''후방에 남아있는 예비 부대를 모두 낙동강 전선에 투입'''해 전쟁을 빨리 끝내기로 결정하였다. 양동작전의 예시로 알려져 있는 [[장사 상륙작전]][* 인천상륙작전과 동일한 날짜인 15일, 서해안의 인천과 정반대에 위치한 [[동해]]안의 [[경상북도]] [[영덕군]] 장사리 북한군 점령지에 학도병을 상륙시킨 작전이다.]의 경우, 동일 날짜와 동일 시간대에 진행되었다는 점과 보급선 차단이라는 상륙 목적을 감안한다면 양동작전보다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낙동강 진군을 위한 지원작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